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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린 북
개봉 : 2019.01.09.
장르 : 드라마
감독 : 피터 패럴리
출연 : 마허샬라 알리, 비고 모텐슨, 린다 카델라니, 세바스찬 매니스캘코, 디미터 D. 마리노프
피부색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랜덤 시스템, 인종차별.
영화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흑인 인권이 바닥을 치던 시대에서 살아가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흑인 돈 셜리는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를 운전기사로 채용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셜리는 미국남부 투어 공연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남부지역은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흑인인 셜리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그의 '안전'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운전기사로 채용한 토니에게 보디가드 역할도 함께 제안하게 됩니다.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채용된 토니 또한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 흑인을 백인보다 못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살았기 때문에 흑인인 셜리의 운전기사로 채용된 자신의 현실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투어 시작 전 토니는 흑인 여행자들을 위한 '그린 북'을 받게 됩니다. 그린북에는 흑인이 출입가능한 식당, 숙소가 적혀 있습니다. 인종차별로 흑인 출입이 불가하거나 직접적으로 차별하는 상황이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셜리의 미국 공연 투어 과정에서 토니는 인종차별의 민낯을 마주하게 됩니다. 백인이었기 때문에 겪지 못했던 일들이 흑인인 셜리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한 분야의 천재조차도 인종차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당시 천재와 유색인종은 어울리지 않은 단어로 정의되었습니다. 천재였던 유색인종 셜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세상이 정의한 백인다운 것과 흑인다운 것의 교집합에 존재하여,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셜리의 모습이 더욱 고독하게 보입니다. 취향, 성격, 삶의 방식이 정반대인 토니와 셜리는 함께 투어를 다니며 서로에게 스며들어갑니다. 투어의 끝을 향해갈수록 두 사람의 우정은 깊어갑니다. 투어 시작 전 셜리는 토니에게 크리스마스이브 날까지 집에 도착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킨 셜리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셜리는 지쳐있는 토니와 교대로 운전을 하며 크리스마스이브날 토니의 집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토니는 셜리에게 자신의 집에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하지만 셜리는 거절합니다. 토니는 혼자 집에 들어가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나누지만 한편으로는 셜리가 신경 쓰입니다. 토니의 거절을 제안한 셜리는 수많은 고민 끝에 발걸음을 돌려 토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토니의 집에 도착한 셜리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토니의 집에서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는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의 비극적 현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틴루터 킹의 'I Have a Dream'으로 시작하는 연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목사이자 흑인해방운동가였습니다. 그는 비폭력주의에 입각하여 흑인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셜리도 비폭력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셜리는 투어 이동 중 경찰에 붙잡혀 유치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셜리는 토니에게 말합니다. "폭력은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셜리의 대사에서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주의자의 단단한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종차별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르다는 것에 기반한 차별은 현대시대에서도 이어집니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주체가 변화합니다. 저는 평등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평등을 실천하였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위선적인 저의 모습을 이제라도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것에 대해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행동을 개선하고자 했을 때,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투쟁으로 힘겹게 얻어진 것 일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내가 알고 있는 정규교육과정이다. 그 교육 안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며, 개선해야 하는 것이 분명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 저 또한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념적인 지식과 일상 속 무의식적 행동의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가식스러운 존재라고 느껴졌습니다. 인종차별을 겪게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그런 사건을 직접적으로 당하는 영화 속 셜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이 많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유럽권이나 북아메리카 지역을 여행할 때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동양인 여자가 서양권에 가서 겪게 될 일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서양인 여자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문제가 저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여행에서 저는 체감할 수 있을 만한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습니다. 제가 둔한 편이라 느끼지 못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불쾌한 경험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인종차별은 마땅한 이유가 없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다수가 납득할 만한 원인이 없습니다. 단지 태어나기를 살색이 다르게 태어난 것 밖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인종은 본인의 의지로는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권,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일상에서 무의식적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개념과 단어가 사라지는 날을 꿈꾸면서 영화 리뷰를 마칩니다.